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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미역귀 / 성영희

미역귀     /    성영희  

 


 
 
미역은 귀로 산다
바위를 파고 듣는 미역줄기들
견내량 세찬 물길에 소용돌이로 붙어살다가
12첩 반상에 진수(珍羞)로 올려 졌다고 했던가
깜깜한 청력으로도 파도처럼 일어서는 돌의 꽃
귀로 자생하는 유연한 물살은
해초들의 텃밭 아닐까

미역을 따고나면 바위는 한동안 난청을 앓는다
돌의 포자인가,
물의 갈기인가, 움켜쥔 귀를 놓으면
어지러운 소리들은 수면 위로 올라와
물결이 된다
파도가 지날 때마다
온몸으로 흘려 쓰는 해초들의 수중악보
흘려 쓴 음표라고 함부로 고쳐 부르지 마라
얇고 가느다란 음파로도 춤을 추는
물의 하체다

저 깊은 곳으로부터 헤엄쳐 온 물의 후음이
긴 파도를 펼치는 시간
잠에서 깬 귀들이 쫑긋쫑긋 햇살을 읽는다

물결을 말리면 저런 모양이 될까
햇살을 만나면 야멸치게 물의 뼈를 버리는
바짝 마른 파도 한 뭇

 

 

<시인의 약력>

  

 

충남 태안 출생, 시마을 동인

2017년 대전일보,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동서문학상> <농어촌 문학상> 수상, 인천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 생을 물질하다』 『귀로 산다

 

 

 

<by 이종원의 시 감상>

201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맘때쯤 시인은 원치 않는 병과 싸우며 마음에 무던히도 색을 입히고 혈관을 흘러가는 글자를 생각과 맞춰보느라 더위를 날려보냈던 것으로 들었다. 몸은 방에 갇혀 있었더라도 생각의 걸음은 산과 바다를 오르내리며 너무 좋고 귀한 약재와 시의 재료, 생각의 포자들을 채취해온 것이 아닌가 한다. 무한 걸음으로 어둠을 헤치고 달려온 시의 걸음은 환하게 꽃을 피웠으니 어렵사리 발견한 포자낭에서 단어를 가꾸고 맛을 스미게 하고 말려서 걸어놓은 아주 특별한 효능을 맛보게 해주는 것 아닐까? 시인의 시는 부드러우면서도 막힘이 없으며 그 맛을 음미하다 보면 나 자신까지 효능을 얻는 것 같은 대리만족에 절로 웃음이 난다. 이후의 시에서도 펼쳐지는 부유하고 풍요로운 시의 성찬은 내가 시를 배우고자 하는 상상에 자주 올려놓는 단골 메뉴가 된다. 물의 후음을 말려 악보로 만들어 노래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으니 그 향기로운 멜로디를 오늘 다시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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