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제림 시인

환생 / 윤제림 환생 / 윤제림 진작에 자목련쯤으로 오시거나 더 기다렸다가 수국이나 백일홍이 되어 오셨으면 금세 당신을 가려냈으련만. 하필 풀꽃으로 오셨어요, 그래. 새벽같이 만나리라 잠도 못 이루고요, 눈뜨자 풀숲으로 내달았는데요. 그렇게 이른 시간에 우리말고 누가 더 있으랴 싶었는데요. 목을 빼고 손짓하시겠거니, 슬렁슬렁 풀섶을 헤집는데요, 아 이런…… 온 산의 풀이란 풀들이 죄다 고개를 쳐들고 사람 찾는 낯이 되지 뭐여요. 이를테면 금낭화, 맥문동, 애기똥풀. 요다음엔 이름이나 일러주세요. 알고 간대도 이름과 얼굴이 따로 놀아서 오늘처럼 허탕만 치고 오겠지요만. 1960년 충북 제천 출생, 인천에서 성장. 1987년 더보기
옥(屋) -소나무 / 윤제림 옥(屋) -소나무 / 윤제림 천금을 준대도 치마끈 한번 풀어본 적 없었네 데고 찢고 그슬리고 할퀴어 멍 천지 육신 피딱지 누더기를 감았어도 무명씨 억만세 뇌이며 살았네 살 저며 보리고개 죽조반 내고 눈물범벅 송화떡으로 꽃입술 주고 어둔 밤엔 팔목 꺾어 광솔불로 일어나 춤추었네 성한 목숨도 징징 오그라드는 이 삼동에 그 몸으로 그 몸으로 상기도 소리하네 부지깽이 같은 목으로 화젓가락 같은 울음을 우네 청산옥 그 여자 ​ ​ 1960년 충북 제천 출생, 인천에서 성장. 1987년 더보기
빈집 / 윤제림 빈집 / 윤제림 울타리에 호박꽃 피었고 사립문 거적문 저렇게 활짝 열려 있으면 주인이 멀리 안 갔다는 표시였다. 금방 돌아온다는 표시였다. 옛날엔. 그런 날이면, 들판을 지나온 바람이 대청마루에 누웠다 가곤 했다. 뒤꼍엔 말나리 피었고 방문 창문 저렇게 활짝 열려 있으면 주인이 멀리 갔다는 표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표시다. 지금은. 오늘 아침엔, 억수장마를 따라온 황토물이 사흘을 묵고 떠났다 윤제림 / 1960년 충북 제천 출생, 인천에서 성장. 1987년 더보기
터미널의 키스 / 윤 제림 터미널의 키스 / 윤 제림 터미널 근처 병원 장례식장 마당 끝 조등 아래서 두 사람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죽음과 관계 깊은 일, 방해될까봐 빙 둘러 지하철을 타러 갔다. 휘적휘적 걸어서 육교를 건너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입맞춤은 끝났을까, 돌아가 내려다보니 한 사람만 무슨 신호등처럼 서서 울고 있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그 사람이 나를 쳐다보며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라는지 가라는지 손수건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윤제림 (윤준호) 대학교수, 시인 출생 1960년 1월 21일 (만 55세), 충북 제천시 소속 서울예술대학 학력 동국대학교 국문과 데뷔 1987년 문예중앙 시 '뿌리 깊은 별들을 위하여' 수상 2014 제14회 지훈문학상 외 3건 경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