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 윤제림
진작에 자목련쯤으로 오시거나
더 기다렸다가 수국이나 백일홍이 되어 오셨으면
금세 당신을 가려냈으련만.
하필 풀꽃으로 오셨어요, 그래.
새벽같이 만나리라 잠도 못 이루고요,
눈뜨자 풀숲으로 내달았는데요.
그렇게 이른 시간에 우리말고
누가 더 있으랴 싶었는데요.
목을 빼고 손짓하시겠거니, 슬렁슬렁
풀섶을 헤집는데요, 아 이런……
온 산의 풀이란 풀들이 죄다 고개를 쳐들고
사람 찾는 낯이 되지 뭐여요.
이를테면 금낭화, 맥문동, 애기똥풀.
요다음엔 이름이나 일러주세요.
알고 간대도 이름과 얼굴이 따로 놀아서
오늘처럼 허탕만 치고 오겠지요만.
<시인의 약력>
1960년 충북 제천 출생, 인천에서 성장. 1987년
<<문예중앙》에 시로 등단.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등. 동시집 『거북
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이름 모를 야생화에서 느끼는 꽃의 아름다움은
유명한 이름표를 달고 서있는 꽃들에게서 느끼는
감동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키 작은 꽃에서
풍기는 짙은 매력은 지나치는 발걸음을 붙잡아두고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게 하는 힘이 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 어쩌면 부활과도 맥이 닿을 수
있겠지만 뿌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는 곳에서
피어난 야생의 작은 꽃들을 볼 때에는 그 강한
생명력과 화려함에 감동의 물결이 높다. 시인 또한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만난 풀꽃으로 인한 격한
감성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
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도 작은 것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인연일 수 있고
우리를 아름답게 가꾸어줄 수 있는 매개체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시인이 불러 멈추게 한 우리의
발걸음과 풀꽃의 매력은 시의 행간에서 우리가
맡아볼 수 있는 소소한 향기이며 또한 눈이 번쩍
뜨일만한 아름다움이기에 다음에 피워낼 시에
대하여 마음을 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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