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 이명윤
이화공원 묘지에 도착하니
기억은 비로소 선명한 색채를 띤다
고왔던 당신,
묘비 옆 화병에 오색 이미지로 피어 있다
계절은 죽음 앞에서 얼마나 공손한지
작년 가을에 뿌린 말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울며불며한 날들은 어느새 잎이 지고
죽음만이 우두커니 피어 있는 시간,
우리는 일렬로 서서
조화를 새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도중에
어린 조카가 한쪽으로 치워둔 꽃을 만지작거린다
죽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한 거다
세월을 뒤집어썼지만
여전히 부릅뜬 웃음을 본다
우리는 모처럼 만났지만 습관처럼 갈 길이 바빴다
서로의 표정에 대해
몇 마디 안부를 던지고 떠나는 길
도로 건너편 허리 굽은 노파가
죽음 한 송이를 오천 원에 팔고 있다
차창 너머로
마주친 마른 과메기의 눈빛
삶이 죽음을 한아름 안고 있다,
한 줄의 문장이 까마귀처럼 펄럭이며
백미러를 따라온다
살다가 문득
삶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한 순간이 있다
그런 날은 온통
흑백으로 흐릿해지는 세상의 이마를
만지작만지작거리고 싶은 것이다
<시인 약력>
2007년 《시안》으로 등단, 시마을 동인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시마을 문학상>, <전태일 문학상>, <수주 문학상>,
<민들레 문학상>, <솟대문학상> 수상
<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시인의 시는 언제 읽어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보여
마음이 푸근해지고 자연스러워진다. 따라가다 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나도 모르게 어느새 강 하구에 이르는 것처
럼 잔잔함 속에서도 걸음을 홀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
마력은 램프 요정 지니 같은 굉장한 힘과 마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따듯함이 묻어있고 또한 바로 곁에서 대화
를 나누고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
서도 툭 던지는 한마디에 깊은 감동이 살아나게 한다. 생
이 마감된 공원묘지에서 한 가족이 모여 누군가를 추모하
고 또 기념하는 모습이 선명하다. 삶이 꺾인 죽음은 한 장
의 사진처럼 조화로 걸려있고 그 곁에는 생화처럼 살아있
는 사람들이 웃음을 짓는다. 어린 조카가 바라보는 시선까
지 삶과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로 묘사한 부분은 가슴을 뭉
클하게 한다. 요즘에는 생화에 점점 가까워지는 조화처럼
어쩌면 시인의 말처럼 삶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해하
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공원묘지 같이 외롭게 서 있
는, 생화보다는 조화가 지키고 있는 쓸쓸한 삶이 될 수 있
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시의 맛으로 허전함을 달래고자 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