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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아쿠아리움 / 김이듬

아쿠아리움 / 김이듬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나는 생각한다

실연한 사람에게 권할 책으로 뭐가 있을까

그가 푸른 바다거북이 곁에서 읽을 책을 달라고 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웃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나는 참는 동물이기 때문에

대형어류를 키우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

최근에 그는 사람을 잃었다고 말한다

죽음을 앞둔 상어와 흑가오리에게 먹이를 주다가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내가 헤엄치는 것을 논다고 말하며 손가락질한다

해저터널로 들어온 아이들도 죽음을 앞둔 어른처럼 돈을 안다

유리벽을 두드리며 나를 깨운다

나는 산호 사이를 헤엄쳐 주다가 모래 비탈면에 누워 사색한다

나는 몸통이 가는 편이고 무리 짓지 않는다

사라진 지느러미가 기억하는 움직임에 따라 쉬기도 한다

누가 가까이 와도 해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곁에서 책을 읽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

궁핍하지만 대담하게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자라고 있다

 

 

월간 시인동네 2018 4월호

 

 

<시인의 약력>

 

 

경남 진주 출생
2001 포에지등단, 부산대 독문과 졸업. 경상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시집으로별모양의 얼룩,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 by 이 종원의 시 감상>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다. 평범하게 나레이션

처럼 들리기도 하고 나의 독백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몇 페이지의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한 참으로

신기한 장면이 된다. 영상을 채우고 있는 어린이와

어른, 물고기와 거대한 수조를 배경으로 한 권이

책이 오버랩되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된다.

화자는 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수조 안에서 마음

대로 헤엄치고 쉼을 반복하는 자유를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휴식과 멈춤을 위해 들어온 사람들은 그 안

에서 자유로운 삶을 항해하며 수조 안 물고기들은

밖으로 나와 그 피곤함을 껴안아주고 다시 유영

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지극히 주관적인 상상에

잠시 몸을 아니 생각을 맡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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