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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시인

인력시장 / 문성해 인력시장 / 문성해 ​ 인력시장 가로수들 사이 간간이 섞인 목련 나무에는 목장갑을 낀 꽃들이 꽂혀 있다 ​ 허공에서 일자리 하나 얻기 위해 울룩불룩 울분으로 피어난 저 꽃들 ​ 사내들 주머니 깊숙한 곳에도 며칠째 똘똘 말린 채 때 전 꽃송이 한켤레 숨겨져 있다 ​ 이른 아침부터 뭉텅이로 피어난 저 꽃들을 씽씽 그냥 지나치는 바람 쓸데없이 꽃잎의 근육만 더욱 부풀리는 봄볕은 아군인가 적군인가 ​ 아침이 다 가도록 불러주는 이 하나 없고 땅바닥만 긁다 일어서는 사내들 하늘 한귀퉁이만 긁다 떨어지는 꽃들 떨어진 꽃잎 속에는 아직도 움켜쥔 허공의 냄새가 난다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라 』『 아주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 더보기
물의 종족 / 문성해 물의 종족 / 문성해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불러본다 물고기 베고니아 버드나무 여름 들판의 옥수수들 그리고 삼 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주워온 몽돌 한 개 그것은 물만 주면 반들반들한 정수리를 내게 보여주곤 했지 옛날 옛적 담뱃내 쩐 누런 방에서 죽은 외할머니도 사흘간 물만으로 사시다가 호르륵 날아가 버리셨지 혹서기의 뱁새처럼 나도 가끔은 물만으로 살고 싶은 저녁이 있네 물가에 앉아 물가가 주는 노래 물가가 주는 반짝거림만으로 환희에 찰 때 그건 물로만 살게 될 나의 마지막을 미리 체험하는 순간,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최후를 사는 것들 느린 보행의 늙은 사마귀 늦여름 오후의 백일홍 저녁이 오기 전 저수지 위에서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것들 눈앞의 숲을 자신이 가진 가장 부드러운 움직임들로 마음껏 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