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장 / 문성해
인력시장 가로수들 사이
간간이 섞인 목련 나무에는
목장갑을 낀 꽃들이 꽂혀 있다
허공에서
일자리 하나 얻기 위해
울룩불룩 울분으로 피어난 저 꽃들
사내들 주머니 깊숙한 곳에도
며칠째 똘똘 말린 채
때 전 꽃송이 한켤레 숨겨져 있다
이른 아침부터 뭉텅이로 피어난 저 꽃들을
씽씽 그냥 지나치는 바람
쓸데없이 꽃잎의 근육만 더욱 부풀리는 봄볕은
아군인가 적군인가
아침이 다 가도록
불러주는 이 하나 없고
땅바닥만 긁다 일어서는 사내들
하늘 한귀퉁이만 긁다 떨어지는 꽃들
떨어진 꽃잎 속에는
아직도 움켜쥔 허공의 냄새가 난다
<시인의 약력>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라 』『 아주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등
<by 이종원의 시 감상>
쫄깃함을 식감에 얹어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주제와 스토리는 누구나 다 알만한 밑바닥 인생의 그날그날
삶을 팔고 있는 모습이지만, 행간에 숨어있는 목련꽃에서는
숭고한 냄새가 난다. 매일 단 하루를 팔아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지난함을 목숨이 짧은 목련, 그러나 화사하며 웃음
넓적한 꽃으로 비유한 것은 직업의 귀천보다는 추운 겨울
지나 꽃 피는 봄에 이르러야 넓어지는 인력시장을 담았으리라.
지금은 코로나19로 그 시장조차 얼어붙어 꽃의 문도 닫히고
그 커다란 꽃잎은 땅바닥에 뒹굴고 있음이 슬프다. 시인의 시는
2005년 이전에 씌여졌을 텐데 예나 지금이나 목련이 지고 난 후
공허함과 선택받지 못한 새벽 시장의 목장갑에서 같은 냄새를 맡는다.
다만 이 어둡고 아련한 맛을 시인의 정교한 언어로 활짝
피워놓았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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