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의 날들 / 이건청
떠돌이 쥐 레밍 떼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다
TV 화면이었는데
들판을 떼 지어 달려온 것들이
벼랑 아래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풍덩 풍덩 뛰어내리는 것들 뒤에
뛰어내려야 할 것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툰드라에 굴을 파고
나뭇잎이나 새싹, 줄기, 뿌리들
잘라 먹고 살던 것들이
자꾸 자꾸 새끼를 길러내서
들판을 그득 채울 때가 되면
다른 들판을 찾아 떠난다는데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서
들판도 하늘도 보지 못한 채
앞장 선 것들만 일심으로 따라 가다가
벼랑을 만나 풍덩 풍덩 덜어져 죽는데
멈출 곳에서 멈추지 모한 것들이
돌아서야 할 곳에 돌아서지 못한 것들이
앞선 것들의 뒤만 쫓아가다가
풍덩풍덩 벼랑으로
밀려 떨어져 내린다는데.
<시인의 약력>
1942년 경기도 이천 출생. 1970년 《現代文學》 1월호에 시 '舊約(구약)'으로
박목월 선생의 추천 완료 등단. 시집 『이건청 시집』 『목마른 자는 잠들고』
망초꽃 하나』 『청동시대를 위하여』 『하이에나』 『코뿔소를 찾아서』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 『푸른 말들에 대한 기억』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굴참나무 숲에서』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실라캔스를 찾아서』.
<by 이종원의 시 감상>
일전, 어느 지방의원의 시절에 맞지 않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지적하는 여론에 대하여
자신을 보호하고자 집어든 악수(惡手), 레밍을 씀으로 인해 레밍이란 단어와 친숙(?)하게 되었는데
시인의 시에서 다시 한번 그 의미와 그들의 생태와 습성에서 오는 결말을 알게 되었다.
생태계에서 나약한 개체들은 군집을 이루게 살기에 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현명과 지혜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먹이사슬의 통로로밖에 머물지 못할 것이다. TV 화면의 동영상을
적나라하게 기술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행간에서 나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의 흐름을 뚫고
불뚝거리는 어떤 것을 볼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아직도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서로에게
레밍 떼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만 결국 엄지 한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은 자기 자신을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경제 현상에서나 증권시장에서도
레밍의 역설은 고딕체로 주기(朱記)되어 있지만 나 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환상은 환상으로
끝나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제넘지만 시제와 행간에 흐르는 자극은 시인의 눈이 포착해야 할
사물과 현상, 그리고 부드럽게 풀어가야 할 매듭 속 실타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읽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의 / 이명윤 (0) | 2023.02.13 |
---|---|
수선집 근처 / 전다형 (0) | 2023.02.13 |
옥(屋) -소나무 / 윤제림 (0) | 2023.02.13 |
젓가락 / 최정신 (0) | 2023.02.13 |
발코니의 시간 / 박은영 (0) | 2023.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