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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수선집 근처 / 전다형

수선집 근처 / 전다형


의수족 아저씨는 십 수년 째

주일만 빼고 수선 일을 했네

나는 팔 부러진 우산을 들고 찾아갔네

허름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단골집 돌아서다 어둠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입간판에게 물었네

수척한 얼굴로 속사정을 털어놓았네

꺾어진 골목으로 어둠 몇 장 굴러다니고

영문을 모르는 바람이 틈새를 드나들고 있었네

맞은편 산뜻한 수선집 미싱 요란하게

푸른 하늘을 박고 있었네

찾아준 은혜 잊지 못할 겁니다

헛걸음하게 해 죄송합니다

삐뚤한 글씨체가 손잡이 근처 붙어 있었네

나는 발길을 돌려 건널목에 섰네

의수족 아저씨가

손때 묻은 연장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네

누가 맡겼다 찾아가지 않은 낡은 가방에

망치, , 가위, 쓰다 남은 실, 지퍼, 우산대 몇

땅으로 기우는 어깨 위에서 강물소리가 들렸네

아저씨가 자꾸만 되돌아보았네

신발 밑창에 친 못처럼 총총하게 박혀 있는

별을 올려다보며 헛기침을 했네

수선집 근처 굵은 주름살 떨어져

뒹굴고 있었네

 

 

<시인의 약력>

  

 

 

경남 의령 출생
2002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부산시인협회 회원,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수선집 근처』 『사과상자의 이설.

 

 

<by 이종원의 시 감상>

 

잔잔하게 흐르는 시의 강을 따라가 보면 어느새 나 또한 작은 수선집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시인의 시를 감상하며 시를 쓰는 사람의 눈은

예리해야 하면서도 따듯해야 하고, 사물을 직관해야 하면서도 넓게 해석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아마 이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도 시의 내용과 비슷한 상황과 환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흐름은 거기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차이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 신발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포기하고 강 밖에서

몸을 풀 것인가 하는 것으로부터 시계(視界)는 천양지차 달라질 것이다. 넓은 풀밭에서

네잎 크로버를 잘 찾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어진다. 시력이 좋다거나

능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심함과 꾸준함 그리고 집중력이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좋은 시일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마음에 흡족한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러한 것들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오래 전 시이지만 잔잔한 감동으로 시의 맛을 되뇌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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