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 최정신
너와 내가 마음이 상해
토라졌을 때도
직립의 막대기로 하나였지
우리가 둘이 하나였기에
핏속에 녹아드는 마음을 알았고
혼자서는 아물지 않던 상처도
만조가 쓸고 간 뻘밭처럼 치유할 수 있었지
우리가 되었다는 건
온몸에 물관을 칭칭 감고
숨과 숨을 기대 맑은 물 받아먹고 살던
어느 숲 솔밭 산에서
서로에게 업이 있었을 테지
또 한 생, 연이 닿아 외로움을 기대며
동행할 수 있다는 건 다행한 축복이지
철없던 푸름은 가고
싸늘해진 등을 기대
함께할 숙주가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 살아서 함께한 날보단
더 긴 날을 함께할지 모르지 않냐고
<시인의 약력>
경기도 파주 출생,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시마을> 동인
시집 『구상나무에게 듣다』,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느티나무의 엽서를 받다』, 『동감』등
<by 이종원의 시 감상>
오랜만에 열어본 사진첩, 흑백사진 속에서 고향의 뒤란을 발견한 것 같은 향수에 젖어본다. 문득 펴본 시인의 시집에서 시선이 멈춘 시, <젓가락>에서 시인의 젊은 시절 향긋한 부부애의 냄새를 맡는다. 젓가락 하나로는 동행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시인의 마음은 오롯이 부부의 해로에 대한 아름다운 경외를 시의 꽃잎으로 감싸주고 있다. 늘 사용하면서도 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해버리게 되는 우리의 습성에서 부부의 연은 업으로 다가오는 것이라는 축복을 노래하기에 때로 신파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이혼이 식은 죽 먹기처럼 보이는 시대에 있어서 시는 풍경소리처럼 단아하고 청량감 있게 다가온다. 아마 시인의 마음에 내재 되어있는 동행의 결이 혈관을 흐르고 있는 물과 피처럼 몸과 마음을 꼭 붙들고 있기에 이런 시가 꽃으로 피어나지 않았을까? 가끔 시인들의 오래된 시집을 열어볼 때마다 부싯돌처럼 가슴이 뛰는 때가 있다. 가히 레트로의 시대이며 역주행을 일으키고 있는 시대에서 거슬러오르는 감성 또한 뉴트로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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