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풀에게 노래함 / 류시화
그것이 내 안에 있다
어지러운 풀냄새가 나는 것으로
그것을 알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이미 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나는 그것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일종의 모래장미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그 무엇
나는 들판으로 걸어갔다 내 현기증이
다만 풀냄새 때문이라고
곧 사라질 것이라고
열에 들떠 내가 손을 뻗자
강 하나가 둥글게 뒤채이기 시작했다
나는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내 안에
더 강렬한 무엇을 느낀다
그것이 나에게 명령한다
나무 아래 양팔을 벌리고 서서
태양을 부르라고
그래서 나무를 불태우라고
들판 가장자리에 더 많은 불꽃이 일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구두는 돌들과 부딪혀
맹수처럼 튀어오른다
어떤 뜻을 가지고 신이
나를 만들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그것은
확실하다 신의 손이 그것과 맞닿아 있다
옷들을 벗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올라
한없이 투명한 빛과 나는 만난다
내 몸 안에 머리 둘 달린
뱀이 있어
내 두 눈으로 혀를 내어미는 것 같다
그러자 어떤 힘이 나를 흔들었다
소리쳤으나 그 소리는 소리나지 않고
나는 공중에서 회전하였다
날개 하나가 천천히 돋아나
불붙는 구름 그 끝없는 들판 위에
나를 눕힌다.
<시인의 약력>
*본명 : 안재찬. *1959년 출생. 충북 옥천군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등. *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by 이종원의 감상>
들판을 날고 있는 엉겅퀴꽃의 씨앗을 본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자연스런 날갯짓에서 시인은
‘어떤 힘’을 강조한다. 시를 잣는 일에서도 우리는
그 ‘어떤 힘’을 느끼게 된다. 내 손으로, 내 생각으로,
내 가슴으로 밀고 가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운용하는 그 ‘어떤 힘’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도 바로 이것이다 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나’라는 자아와 그 자아를 이끌어가고 있는
또 다른 영적인 자아의 복합관계가 아닐까? 하지만
단지 내 생각일 뿐이다. 엉겅퀴는 꽃을 피우고 다시
생존을 이어갈 씨앗의 전파에 있어서 흩어져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 잔상을 그림처럼, 무대처럼 연출해
놓은 시인의 시에서 장엄한 삶의 현장에서 물결치는
활력과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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