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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버려지는 신발들은 슬프다 / 김유석

버려지는 신발들은 슬프다 / 김유석

 

 

 

사람들은 왜 신발을 벗어 두고 가는 걸까

그게 슬펐다, 그 어떤 유서보다

물가에 가지런히 놓인 구두 한 켤레

 

어느 헐거운 길이 거기까지 따라와서

맨발이 되었을까

 

문단속을 하는 대신

토방에 신발을 반듯이 올려놓고 집 비우던 아버지

삼우제 날 문밖에 내어 태우던

부르튼 발바닥들이 슬펐다

 

그래서일까

유령들은 대부분 발을 감춘다

 

신발을 신고 있다는 건

어디쯤의 고단한 이정(里程)

새 신발을 산다는 건

닳게 해야 할 바닥이 남았다는 것

 

신발을 잃어버리고 울먹이던 유년의 맨발에

유행 지난 멀쩡한 구두 한 벌

버리기 전 헐겹게 신겨보며

 

몇 켤레쯤 여벌을 가진 생을 떠올려 본다 .

 

<시와 시학>2008년 봄호.

 

 

 

<시인의 약력>

 

전북 김제 출생,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상처에 대하여????,

????놀이의 방식????,<붉음이 제 몸을 휜다>

 

 

<by 이종원의 시 감상>

 

나는 이런 시가 좋다. 시인의 다른 시들도 감성을 이끌어내는 힘이 크지만 이 시에서는

울컥 눈물까지도 토해놓게 만든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회한 등의 시는 어쩌면

통속적이면서도 쉽게 마음을 가로채는 주제가 되게에 많은 시인들이 다루어, 조금은

식상해지는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의 조리법과 정성에 따라 그 맛은 감동의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그냥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하기에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반전이 있기도 하다.

<버려지는 신발..>의 주제 또한 같은 맥락이다. 버려진 신발이 유서가 되고, 유년의 맨발에

신어보는 구두가 되고, 몇 켤레쯤 여벌을 가진 생까지 끌고 가는 힘은 대단하다. 누구나

언제쯤일지 명시할 수는 없지만 신발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삶에서 수 십 켤레의

구두와 신발을 신고 살아가다가 벗어놓고 가겠지만 그동안의 삶에 벗어놓은 신발에 무엇을

얹어놓고 갈 것인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시간이다. 삶의 유서???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무엇을 기대할까?? 나는 내 작은 시들을 채워 몇 권의 책을 얹어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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