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똥 / 복효근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이리저리 눈치보며
똥 빠지게 피해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릴 적에 똥마저 버렸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박힌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에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들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
<시인의 약력>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에 젊은 시인상 수상하며 등단
1995년 편운문학상 수상, 2000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1993)”, “버마재비 사랑(1996)”,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2002)”, “꽃 아닌 것 없다(2017)” 등
<by 이종원의 시 감상>
시인의 시를 감상하면서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우리 속담을 떠올린다.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포효하는 시인의 정기는 독자들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라
생각한다. 보잘 것 없는 크기를 가졌지만 모든 맛의 원천을
가지고 있는 뼈대 있는 가문의 족보를 그려낸 시인의
기상에서 힘찬 지느러미와, 작은 몸에 스며들어 기깔나게
우려낸 시인의 맛을 풍요롭게 만끽해본다. 누가 멸치똥을
우습게 보겠는가? 누가 시인의 일성을 식탁에서 물리겠는가?
식도락가라면 현지로 달려가 살아있는 말랑한 살점을 혀에
들이대지 않겠는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시의 진한 육수를
가져다 내 시의 조미료로 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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