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 박은영
빈티지 구제옷 가게,
물 빠진 청바지들이 행거에 걸려 있다
목숨보다 질긴 허물들
한때, 저 하의 속에는 살 연한 애벌레가 살았다
세상 모든 얼룩은 블루보다 옅은 색
짙푸른 배경을 가진 외침은 닳지 않았다
통 좁은 골목에서 걷어차이고 뒹굴고 밟힐 때면
멍드는 건 속살이었다
사랑과 명예와 이름을 잃고 돌아서던 밤과
태양을 좇아도 밝아오지 않던 정의와
기장이 길어 끌려가던
울분의 새벽을 블루 안쪽으로 감추고
질기게 버텨낸 것이다
인디고는
인내와 견디고의 합성어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애벌레들은 청춘의 옷을 벗어야 한다
질긴 허물을 찢고 맨살을 드러내는
각선의 방식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대생들이
세상을 물들이며 흘러가는 저녁의 밑단
빈티지가게는
어둠을 늘려 찢어진 역사를 수선하고
물 빠진 허물,
그 속에 살았던 푸른 몸은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을까
청바지 무릎이 주먹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다
한 시대를 개척한 흔적이다
*인디고: 청색염료.
<시인의 약력>
전남 강진 출생, 2018년 문화일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1회 농어촌희망문학상, 제2회 제주4.3문학상
대상. 제2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제9회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수상.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
<by 이종원의 시 감상>
줄줄이 걸려있는 청바지에서 인디고를 검출하고,
그 속에 살 연한 애벌레까지 꿰뚫어보고 있는 시인의
혜안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그러했듯이 시인이 감춰두었던 시어를 한 움큼 꺼낼
때마다 그 빛깔과 자태에 눈과 머리가 영롱해짐을
느낀다. 빈티지의 이면, 그 속에서 오랫동안 견디고
닳아빠진 것들은 시의 언어를 만드느라 발라놓은
진주조개의 타액 같은 것이리라. 청바지는 질긴 것이
특수성이기도 하기에 시인의 끈질긴 시력과 가슴 속
함성은 참으로 질기도록 언어의 조합을 만들어내었고
오랫동안 끌고 밟히고 또 무릎이 튀어나오도록 스스로
시달렸을 것이다. 대개 겉은 보고 느끼지만 그 속은
진심을 다해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청바지는 보았어도 인디고는 보지 못했고, 튀어나온
무릎과 해진 바지 끝단은 보았지만 허물과 맨살이
감내해야 하는 울분과 그리고 애벌레가 외쳤던
인디고는 알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허름했던 나의
청춘과 아직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의
시력(詩力)을 잠시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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