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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비에게 쓰다 / 윤성택 시인

비에게 쓰다 / 윤성택 시인

 

 

 

버스는 아가미를 열고 우산 몇을 띄워놓네

다음 정차역까지 단숨에 가려는 듯

바퀴마다 지느러미 같은 물길이 돋네

수초처럼 흔들리는 이정표는

번들거리며 흘러가네 밤은 네온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고, 푸르다가 붉다가

점멸하는 자음만으로 도시를 읽네

건너편 창을 훑고 내려오는 자동차 불빛

밀물처럼 모서리에서 부서지네

물소리가 밤새 저리 뒤척이며

경적을 건져낼 것이네 한 떼의 은빛 치어가

가로등으로 몰려가네 살 오른 빗방울이

창문으로 수없이 입질을 해오지만

내가 던진 찌는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네

이렇게 막막한 밤이면 그립다든가

보고 싶다든가, 쓸쓸한 표류를 어쩌지 못하네

무엇이든 깊어지기 시작하면

그렇게 일순간 떠오르는 것

흐르는 생각 끝에 맨홀이 역류하네

 

 

<시인의 약력>

 

 

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 문학사상에 시 수배전단을 보고외 두편으로 등단.

2015년 올해의 젊은 시인상, 2019년 제9 시와 표현 작품상 수상

시집 리트머스(2006)”, “()에 관한 사담들(2013)”이 있음

[출처] /수배전단을 보고 - 윤성택|작성자 첫발자욱

 

 

 

<by 이종원의 시 감상>

 

 

오랜만에 펴든 시인의 시집 <리트머스>를 한달음에 읽어 내려가다가

눈길이 멈추는 곳에서 가슴도 따라 멈추었다. 버스가 띄워놓은 우산처럼

이렇게 감각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사유를 그동안 나는 왜 놓치고

있었을까? 내 생각도 빗물로 내렸다가 물길이 되어 쏜살같이 흘러갔다.

물론 혹자는 다른 시인들처럼 일반적 형태의 비슷한 사유라며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비에게 쓰다>에서

시인이 단숨에 쏟아놓은 고백이 달리는 버스에 올라탄 승객에게

전해지는 감미로운 음악으로 들려 그 노래를 제대로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 보았다. 비의 감성이 들어찬 버스는 물길처럼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이고 흐르다가 또다시 비로 돌아갈 것이기에 비와 버스가

멈추기 전, 잘 써 내려간 가사와 멜로디로 노래 한 곡을 완성하고

싶어 덩달아 나의 심장 박동도 요동친다. 비와 화자 모두 시인을

지칭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욱 몰입되어서 나의 표류를 건져내고는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시인이 내게 선물해준 행복한

감상은 별볼일 없는 내 낚시의 미끼를 덥석 물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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