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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지금 격리 중입니다 / 고성만

지금 격리 중입니다 / 고성만

 

 

당신을 만나고 온 날 손을 씻습니다

귀를 씻습니다

입을 씻습니다

죄책감을 지우고

기억을 채웁니다

수행기도처도 아닌데

외부인을 일절 출입금지 했습니다

탱자울 가시 세워 스스로

위리안치 한 지 벌써 몇 달

산딸나무 꽃은 피어 뒷마당이 하얗고

들고양이 새끼 낳더니 새 떼가 날아왔습니다

텅 빈 골목 햇살의 날개가 퍼덕거립니다

수평선에 남실남실 물이 차오를 때

고기 잡으러 나간 아버지

서녘하늘 노을 질 때

머릿수건 둘러매고 산밭에 가신 어머니

새둥지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나는

방파제 넘어 다리 건너

별빛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파도 소리로 가득 채운 방,

비로소

울음이 터집니다

 

계간 시인수첩 2020년 가을호

 

<시인의 약력>

 


 

 

전북 부안출생

조선대 국어교육과, 전남대 교육대학원 졸업

1998 동서문학 신인상 당선

시집 올해 처음 본 나비』 『슬픔을 사육하다

햇살 바이러스』 『마네킹과 퀵서비스맨

시조집 파란, 만장』​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지금의 내 모습이 시와 같습니다. 벌써 오래

지났지만 위리안치의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또한 비슷한 모습으로 몰래 탱자나무 가시 울

타리를 비집고 나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격리인지 별리인지 모를 이

상한 게임에 붙들려 노예 아닌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타인에 의해, 아니 가끔은 자

의에 의해 격리의섬 안으로 들어가 갇힙니다.

갑작스레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나 또한 수행인

지 알고 있었는데 절해고도의 섬에 격리의 시

간을 채우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

도 낙심 중에서도 시를 낚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지나가는 상선이나 낚싯배에 구원의

외마디 소리는 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마

격리를 버리지 못한 나의 결정에 스스로 울음

을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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