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바트 마테르 / 진은영
십자가 아래 나의 암소가 울고 있다
오 사랑하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
나는 꿈에 못 박혀
아직 살아 있답니다
밤을 향해 돌아서는 내 입술을
당신의 젖은 손가락으로 읽어 보세요
세계는 거대한 푸른 종소리처럼
내 머리 위에서 울리고 있어요
나는 밤의 부속품처럼
어둠 속으로 깊숙이 떨어져 나왔어요
별처럼 순한 당신 눈빛과
네 개의 길고 따뜻한 뱃속을 지나가는 계절들 사이에서도
소화되지 않은 채 나는 남아 있어요
당신은 오래된 술 같아요
내가 마시는 술에 슬픈 찌꺼기가 떠도는 건
내 탓이 아니에요, 어머니
무엇을 마시든 나는 두껍게 취기를 껴입지만 늘 추워요
나를 향해 당신이 동굴처럼 뚫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 팔을 뻗어 서로를 안아요
오 사랑해
서로를 자꾸 끌어당겨요
물에 빠진 사람들처럼
두려움보다
슬픔보다
흰 재가 더 높이 쌓이고 있어요
어머니, 결국 나는 내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까요?
뚜껑 열린 석관이
세월 속에서 제 주인을 유실하듯
당신이 당신 아이를 잃어버렸듯
바람이 날아가는 투명비닐 봉지를 분실하듯
당신은 찾을 수 없어요
정말이지 우린 다르게 생겼어요
당신을 닮았던 얼굴 위에 낯선 고통의 진흙을 덧칠하며
내 얼굴은 점점 두껍게 말라갈 테니
목이 말라요 어머니
마른 풀밭 위에 빈병처럼
나는 또 흘러들어요
당신이 몇 방울 남지 않은 곳으로
⸻월간 《시인동네》 2020년 7월호
<시인의 약력>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2000년 《문학과사회》봄호로 등단
시집으로『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그 밖에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니체, 영원회귀로와 차이의 철학』등.
<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성모애상’이라고도 부르는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는 직역하면 ‘서 있는 어머니’라는 뜻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의 곁에 서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성모 마리아
를 위한 노래이다. 이러한 작품의 주제는 미술에
비유하자면 성모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 그리
스도를 안고 있는 ‘피에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아들 예수를 직관으로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실신을 누가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식을 잃는 것을 ‘천붕’이라 했다. 대신 죽을 수 있다
면 그렇게 선택하겠다 말하는 것이 진정한 모성이다.
시인은 어머니 앞에서 죽음을 앞둔 자식이 이승에서
의 마지막 대화를 뜨겁게 나눌 수 있도록 손과 마음
까지 붙들어 매어주는 것 같아 덩달아 마음이 뜨거워
진다. 시인이 베풀어준 상실감과 단절을 녹이고 삭여
주는 시의 표현은 후일 내가 가져가고 싶은 이별의 방
식 같은 것이라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저절로 저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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