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신춘문에 썸네일형 리스트형 페인트 공 / 성영희 페인트 공 / 성영희 그에게 깨끗한 옷이란 없다 한 가닥 밧줄을 뽑으며 사는 사내 거미처럼 외벽에 붙어 어느 날은 창과 벽을 묻혀오고 또 어떤 날은 흘러내리는 지붕을 묻혀 돌아온다 사다리를 오르거나 밧줄을 타거나 한결같이 허공에 뜬 얼룩진 옷 얼마나 더 흘러내려야 저 절벽 꼭대기에 깃발 하나 꽂을 수 있나 저것은 공중에 찍힌 데칼코마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작업복이다 저렇게 화려한 옷이 일상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끊임없이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 거미가 정글을 탈출할 때 죽음에 쓸 밑줄까지 품고 나오듯 공중을 거쳐 안착한 거미들의 거푸집 하루 열두 번씩 변한다는 카멜레온도 마지막엔 제 색깔을 찾는다는데 하나의 직업과 함께 끝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가 내려온 벽면에는 푸른 싹이 자라고..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