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이 종원
(사막을 예수와 걸어가던 청년이 모래폭풍을 만났다.
순간 예수의 발자국은 사라지고 모래폭풍을 걸어나왔
을 때 모래에 찍힌 발자국은 두 개 뿐이었다. 다시 예수
가 나타났을 때 청년은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힘
들 때 외면하는 예수는 제게 필요 없습니다. 어디 계셨
나요? 예수는 말했다. "내가 너르르 업고 건너왔느니라"
.......)
독백처럼 내 길이 흘러나온다
길은 휘어진 곳에서 다른 인연을 만나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므로 낙엽으로 지는 지금
가던 길을 계속 가도 좋아
호흡은 생명을 준 것
불안과 혼돈에 대하여 골똘하다가
바람소리 같은 은밀한 호명을 놓쳤다
괄호 안 숫자들이 암호를 풀고 나갔을 때 분명
나는 누군가에 업혀있거나 달라붙어 있다
길이거나 등 뒤 기척을 듣는 순간
귀먹은 겨울을 벗어나기 위해
떨어진 낙엽과 체온을 나누는 사람들처럼
등이 따듯해진다
기억이 지워지는 사막을 지나
나를 에워싼 해에서 날아온 나비
한나절씩 등에 앉았다 간다
<시집 2017 외상장부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