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의 편지 / 허영숙
우체부도 없이 저 편지들 어떻게 여기로 왔을까요. 다 읽기도 전에 또 쌓이는 편지에는 붉은 곡절만 가득합니다.
어제는 어둑신한 틈을 타고 누가 잎들을 모조리 뜯어가는 소리 들었습니다 스스로 버려야 할 때라는 것을 ,저 잎 보내지 않고서는 다시 여기 올 수 없다는 것을 바람도 안 까닭이겠지요.
일생이란 잠시 극적으로 머물다 지나가는 단편 같은 것인지요. 푸른 날의 비명조차 조용히 묻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전언에 자잘한 슬픔이 북받쳐 올라 마음이 자꾸만 안쪽으로 밀립니다.
한 잎의 간절함이 사람을 살리고, 상하게 해도 한 우주를 내어주어야 또 살 수 있으므로 붓으로 억지로 그릴 수 있는 목숨은 없다는 것, 억지로 풀어낼 어설픈 반전도 여기서는 쓸 수 없는 작법일 뿐 이라는 것,
겨울 내내 육신을 앓을 나무와 소인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붉은 잎들의 행려를 지켜보는데 누가 자신의 화구畵具를 챙겨 조용히 떠나고 있습니다
<시인의 약력>
2006년 《시안》으로 등단
2018년 <전북도민일보>소설부문 <파티,파티>로 신춘문예 당선
시집『바코드』, 『뭉클한 구름』,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느티나무의 엽서를 받다』, 『동감』등.
2016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by 이종원의 시 감상>
오 헨리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를 읽어본 사람은 시제 한 줄과 첫 연으로부터 풍기는 향기로 인해 시의 맛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은 시인이 만들고 숙성시킨 장맛과 육수, 그리고 손맛이 만들어낸 특제 소스로 인하여 더욱 감칠맛을 낸다. 물론 자연 그대로의 맛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주 먹다 보면 가끔은 새로운 맛을 가미하여 색다른 맛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도 사실이다. 허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명제 때문에 가벼이 여기거나 또는 가짜로 평가절하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허구가 만들어내는 반전이 어떤 때는 플라시보 효과를 톡톡히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인이 중의로 담아놓은 인생을 우리는 연습 없이 살아가고 있기에 작은 경험과 타인이 살아온 경험에서 얻는 학습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계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길은 시인 뿐만 아니라 다른 문학과 예술을 좇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지평을 열어준다는 것에 이의가 없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에 시의 이파리를 계속하여 붙이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뇌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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