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 김유석
툭, 차버리고 싶은 감정과 툭 차이는 감정 중 소리를 내는 것은 어느 쪽일까
채워지기 전과 채웠다 비워낸 공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시끄러울까
통과 깡통의 차이, 깡통을 차다와 깡통 차다 사이
만들어질 때 미리 담긴 소음인지 비워진 후의 울림인지 깡 찬 소리가 난다
몇 배 새끼를 빼낸 뒤 뱃가죽 축 늘어진 늙은 돼지를 이르기도 하는 속된 말, 깡통이 뭐길래
깡통을 보면 차고 싶어지나
그 속에서 뭐가 튀어 나와 참새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나
깡통을 깡통으로만 아는 순 깡통들, 납작하게 눌러 밟아버리면 차라리 나을 건데
톡, 톡, 누군가 자꾸 나를 걷어차기만 한다
<시인의 약력>
전북 김제 출생,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
선,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상처에 대하
여>,<놀이의 방식>,<붉음이 제 몸을 휜다>
<by 이종원의 시 감상>
‘몇 배 새끼를 빼낸 뒤 뱃가죽 축 늘어진 늙은 돼지를
이르기도 하는 속된 말’이 깡통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인의 고향과 활동 반경이 대도시가 아니고
자연과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시어와 행간에서 황
토 냄새가 난다. 통과 깡통의 차이, 채워진 것과 비워
진 것의 차이를 오묘하게 다뤄낸 솜씨에 새로운 아이
템을 하나 더 획득했다. 어쩌면 버려진 빈 깡통처럼
되어가는 모습이 훌쩍 지나버린 삶의 잔고인지도 모
르겠다. 수명이 길어질수록 삶의 탄력 또한 길어지기
위해 채웠다 비웠다를 반복하는 작은 수고는 멈추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시를 심고
가꾸고 지어내는 일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시인의 깊은 생각을 기웃거리다가 그 소리에 빠져서
그 속으로 들어가보는 일은 정답을 얻는 것보다는 그
늪의 언저리에서라도 건져낼 수 있는 내 것이 있다는
것이 기쁘고 행복한 일이라 생각한다. 긴 여운으로
시인의 다른 시에도 빠져들고 싶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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