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시인의 약력>
1950 경상남도 하동에서 출생,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로 당선.
1982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로 당선. 1979년 첫시집
《슬픔이기쁨에게》를 출간. 이후 시집 《서울의 예수》(1982)와 《새벽편지》(1987) 등 다수.
<by 이종원의 시 감상>
가을이 짙어가는 오후의 하늘에 감성을 자극하는 시 한 편에
제대로 낚였다. 잠시 잃어버렸던 나에 대한 의문부호는 편지를
매개로 하여 살아났으며 기다림에 대한 회억이 기억 저 편을
두들겨 편린들을 꺼내고 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언인가? 지는 저녁 해는 이 가을의 한복판에 더 불타
오르고 나는 그 불씨에 기억도 타고 가슴도 타올라 남은
것은 한 줌 재 밖에 남지 않을까? 기다림은 사랑을 형상화
시키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놓친 오늘과
그리고 사랑과 그 어떤 무엇을 덜어내고 있으며 기다림으로
덜어놓은 그 모습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시제로 옮겨가 다시 내가 만나고감동을 얻어낼
수 있는 메시지를 내뿜고 있는 것 같아서 나 또한 시인의
시에 기대어 기다림의 편지를 기다려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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