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방식 / 박종인
죽은 듯이 앙상한 나무가 날씨의 위로를 받자 부스스 눈을 뜨기 시작했다 봄볕 한 사발로 메마른 입술에 생기가 돌았다 이것은 가능성이다
예상은 빗나가거나 적중한다 절반이 확률을 넘었을 때 봄이다 잘려진 목을 접목하는 기술자들, 전문가의 손이 빛나는 철이다
무르익어 번창한 시기는 봄의 중년, 중년은 녹음과 그늘로 이어진다 봄의 뿌리에서 출발한 계절의 마디들, 네 개의 뿌리는 네 개의 매듭을 지닌다
되풀이되는 기술에 나이테가 그려진다 봄의 고리에 들러붙은 수많은 죽음들, 한 번의 죽음 위에 안간힘이 다녀가고 바람의 피가 서늘해진다
그늘을 좇아 모여든 것들은 그늘의 변심으로 다시 흩어지고 부활을 꿈꾸는 가능성은 어둠 속에 웅크린다
⸺시집 『연극무대』 2020년 9월
<시인의 약력>
전북 무주 출생
2010년《애지》로 등단, 산림청 주관 제9회 산림
문화작품공모전 대상 수상. 2014년 문예진흥
기금 수혜, 시집 「미술관에서 애인을 삽니다」
『연극무대』
<by 이종원의 시 감상>
작은 뿌리로 가열차게 빨아올리는 물과 희미한 영양
분의 흐름이 보이는 듯하다. 그는 자기의 호흡으로 땅
위에 상납해야 하는 부분과 또 자기의 삶에 대한 번식
의 사명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어느 쪽으로 뻗어야 할
지 방향까지 설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둡
고 숨막히는 땅속에서 이루어지는 생존의 모습이 디
테일하게 단면도로 와 닿는 것 같다. 미세한 붓으로
그려놓은 도면에서는 화려한 색감이 묻어나고 알싸한
기억의 맛이 침을 고이게 한다. 사계절을 사람과 같이
나며 기록한 나이테의 비밀번호는 알 수 없지만 암호
해독을 위해 시인이 심어놓은 키워드는 정말 고로쇠
수액같이 시원함과 달달함을 느끼게 한다.
'내가 읽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감 / 김사이 (0) | 2023.02.14 |
---|---|
골목을 수배합니다 / 최정신 (0) | 2023.02.14 |
오직, 바람 / 김 산 (0) | 2023.02.14 |
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0) | 2023.02.14 |
흔적 / 서정윤 (0) | 202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