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근처 / 양현근
밤늦은 시간 버스정류장에서
취객 몇이 비틀거리는 방향을 서로 가누고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버스는 올 것인지
기다리는 버스는 대체 오기나 할 것인지
알려주거나 물어오는 이도 없고
누군가는 기다림을 접고 정류장을 빠져나가고
또 누군가는 무작정 기다린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환한 이마,
누군가의 서툰 기별이 사뭇 그립기도 한 시간
발을 헛디딘 활엽들이 사그락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불빛을 세우기 위해 차도로 내려선다
목을 길게 늘려도 계절은 아직 제 자리
한 계절 돌아와도 다시 제 자리
한때 누군가가 그토록 간절했던 시간들
환했던 우리들의 스물이거나 서른하고도 몇이거나
이제는 모두 서둘러 떠나간 정류장에서
세상과 불화한 담배꽁초만 수북하니 뒹구는데
맨발로 서있던 기다림의 근처
바퀴 울음소리 캄캄하게 젖어가도록
아직도 망설이는 사람들 그믐처럼 깊어가고
가로등 그림자가 어두워진 발등을 베고
고단한 몸을 가만가만 누이고 있다
-양현근 시집 『기다림 근처』(문학의 전당, 2013년)에서
<시인의 약력>
1998년 『창조문학』 등단
시집 『수채화로 사는 날』 『안부가 그리운 날』
『길은 그리운 쪽으로 눕는다』 『기다림 근처』 등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by 이종원의 시 감상>
요즈음은 잘 보이지 않는 순수함이 묻어있는 기다림
의 모습이기에 그 잔잔한 시간의 대열 속에 내 기다
림도 조심스레 끼워 넣어 본다. 어쩌면 세월을 역류
하여 굳은살 박힌 심장을 맛사지하여 막힌 숨을 토
해내게 하는 청량함까지 느끼게 한다. 아마도 소주
나 막걸리에 김치전이나 묵사발 같은 안주로 시간을
섞었기에 감정을 분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서정도 깊은 맛으로 다가와 기다림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 곁에 선 가로수의 등처럼 시의 등에 기대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몇차례의 버스나 택시를 놓아주
어도 좋을 만큼의 멋스러움을 가슴속 사진기 필픔에
담아보는 중이다. 추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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