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 이정란
너는 나를 순례하지 않았는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그래 마음인가
같은 동심원에 묶인 너와 나 황홀이다
너를 보면서 완전한 반쪽이 되어간다
뒤돌아서면 안 보이는 등
검은 옷 한 벌을 우린 함께 입었다
암암한 반쪽을 비추기 위해
하나가 될 수 없는 반쪽
나는 너의 침묵이 아니라서
너는 나의 입김이 아니라서
마주볼 때마다 들키는 사이로구나
나를 떠나면 너에게
너를 떠나면 나에게
도착하는 반쪽짜리 행로
오른손을 올려, 그렇지 너의 심장
악몽을 던져, 이런 나의 아침이 무너졌구나
너의 꽃나무를 빌릴 수밖에
등을 돌리기 전에 꽃잎 그래
어깨를 맞대보자
직각
완벽한 타인을 이루는 구조
바람의 기억을 나눠 가지면
수평
어색하고 어설프고 하나 되는 순간
들리지 않는 음을 노래할 수도 있다
검은 옷을 벗어볼까
얼굴은 떨어뜨리고
결국 빈 목소리로 이별하는
해와 달의 이야기구나
ㅡ계간 《열린시학》 2020년 겨울호
<시인의 약력>
1959년 서울출생
1999년《심상》으로 등단
시집『어둠,흑맥주가 있는 카페』 『나무의 기억력』
『눈사람 라라』『이를테면 빗방울』등
<by 이종원의 시 감상>
나의 이쪽을 그대의 저쪽이 가져간 것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왼쪽의 그의 오른
쪽이 되고 숫자는 거꾸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가끔은 허상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으리라 본다. 시
인이 해와 달을 대비시켜 놓은 것 또한 시인의 마음이
가르키는 희망사항 중 하나라고 내 생각의 발을 들이
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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