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멀어져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내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박노해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에서
<시인의 약력>
1957년 전라남도 함평 출생
1983년 《시와경제》 등단
시집 『노동의 새벽』 『겨울이 꽃핀다』 『참된 시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사진 에세이 『라 광야 - 빛으로 쓴 시』 『나 거기에
그들처럼』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다른 길』산문집
『오늘은 다르게』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등.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1992년 시인클럽 포에트리 인터내셔널
로테르담재단 인권상.
<by 이종원의 시 감상>
깨달음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한다. 패스트푸드 시대
에 살아가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빨리빨
리를 외치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결국 지나쳐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 놓친 것 앞에서 더 오래 머물며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본다.
시인의 삶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비슷하다. 그
런 안타까움의 결과 앞에서 후회와 회한의 모습에
대하여 동의하는 것또한 잠시 망각의 늪에 빠져 다시
빠르게 달음박질에 스스로 채찍을 가하는 모습이 목
격된다. 나의 걸음에브레이크를 밟아본다. 하늘의
구름이 더 빠르게 지나가고 밤하늘 별빛이 쏟아져내
림에 박수를 치게 된다. 시의 행간에 나를 뉘어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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