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것은 빨리 증발한다 / 김종해
따스한 것은 빨리 증발한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까
나의 동무들은 모두 떠나고
나 혼자 남아 있다
외로우니까 추억이 그 자리를 넓힌다
내 안에서 인기척을 내는 것은
무인도뿐이다
저혼자 바위가 되거나
바람이 되는 것이다
하루치의 미세량!
무인도에선
그리운 사람의 이름만
파도소리를 내고 있다.
**김종해 시집 [풀]에서**
<시인의 약력>
김종해(金鍾海, 1941년~ ) 부산에서 출생. 1963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당선《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회상 수상문학세계사 창립 대표를 역임시집으로 《인간의 악기(樂惡)》
(1966), 《신의 열쇠》,《왜 아니 오시나요》,《풀》《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등, 시선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간행
<감상 by 이종원>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 시를 읽자마자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주변에서 가까운 분들과 또 크고
작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안타깝게 떠나
가는 아픔을 보면서 나 또한 언제든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픔이 들어서기도 했다. 시인의 독백처럼,
깨어나 보니 무인도에 홀로 남아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란
걸음과 생각 모두 못에 박힌 듯 주저앉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리움만은 끝까지 놓지 않고 철썩이는
파도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잠시 한 편의 영상을 연속
하여 리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럼요 당연하지요 하루 치의 미세량 만으로도 충분히 추억
을 소환하여 유영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주셨기에 이
렇게 행복한 감상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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