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 박 일
금암다방 레지는 표정없이 말을 이어갔어
신안 어디께서 무작정 가출했다고 했어
첨엔 홀가분한 기분이었다고 했어
사나흘 버스터미널에서 뻐팅기다가
그럴싸한 사내를 발견했다고 했어
환호작약
입질은 단 한번으로 끝났다고 했어
비릿한 살냄새 뿌리며 매일 발버둥쳤으나
그 때마다 바늘은
폐부 깊숙히 찔러왔다고 했어
세상이 온통 걸낚*
입고 있던 미니스커트가
유일한 밥이었다고도 했어
차분한 어조로 마치는가 싶더니
전화를 받고
덜삭은 웃음을 보자기에 싸서 서둘러 나갔어
거리엔 버즘같은 긴 겨울 물러나고
입춘이 막 걸음마를 떼고 있었어
* 주낙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미끼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
<시인의 약력>
2006년 《시사사》 등단, 시집 『난』 등
< by 이종원의 시 감상>
홍어를 처음 맛보았을 때가 이런 맛이었던가?
시의 행간에서 짙은 암모니아 냄새를 무릅쓰고
쉽게 뱉아내지 못하고 질겅질겅 맛을 씹다가
겨우 삼켜버렸는데 한참이나 지나서야 몇 번의
과정을 거쳐 곰삭은 홍어의 맛을 반추하던 것
같은 아련함이 묻어난다. 젊음을 겪었던 무리들이
홍어를 안주삼아 그 시절의 다방에서 차와 함게
나누었던 곰삭은 언어와 유희들도 찰지게 꿈틀
거린다. 냄새와 달리 홍어는 참으로 비싼 생선이다.
사랑과 삶에 낚인 다방레지의 순수성이 아마도
짙은 암모니아의 호소력을 닮지 않았을까? 시인의
마음 또한 지역의 방언을빌어 삶의 냄새를 풍겨내고
싶었으리라. 바다를 놓치고 식탁으로 올라선 홍어,
그리고 항아리 속에서 삭아가는 홍어는 믿었던
사랑에서 배신당하고 떠나가는 모습이 보여 입춘조차
영 따사롭지 못한 것 같아 야속하다. 시인의 너무나
빠른 세상과의 이별 또한 아쉽고 서러워 그 또한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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