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 최정신
삼월, 게으른 눈발이
뒷걸음질 멈짓
진주 지나 하동포구
평사리 사십리 한 물목
첫 연은 매화라 쓰고
둘 연은 산수라 쓰고
삼 연은 대숲이라 쓰는데
여백을 동백이 채운다
윤슬이 받아 적는
꽃타래 헝클어진 시를 언제 다 읽고 가라고
봄빛 하양 긴 날을 그리 읊는가
자꾸만 쓰지 마라
그토록 시울 깊은 절경의 시를,
천근 카르마는 어디쯤 부려야 하나
천릿길 더듬어 물 주렴 사연 따위 너에겐 소용치 않은 줄 알았더니
그짝 설움이 더 깊다니
수양버들 잇바디가 물색을 닮았음은
저도 강 따라 흐르고 싶나니
어쩌랴 흐르기는 너나 나나
한결,
화개장터 목로에
벚굴 한 점, 막걸리 한 모금,
너는 젖고 나는 취한다
구례, 소(沼) 깊은 계곡 거슬러 화엄에 들면
백매도 흑매도 한 오백 년 늙는다니
기리운 마음은 내 몫,
기어코 하룻밤 저승 살이 온 듯 머물어 주마
<시인의 약력>
경기도 파주 출생, <문학세계> 신인상 수상, <시마을> 동인
시집 『구상나무에게 듣다』,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느티나무의 엽서를 받다』, 『동감』등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섬진강을 제대로 걸어보거나 취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시 한 편으로 섬진강 긴긴 강을
한 바퀴 제대로 돌아본 것처럼 황홀해진다.
하동과 구례는 물론 순창과 함양을 거쳐 진주
초입까지 물길과 꽃길을 따라 발길을 얹어놓는
맛은 물론 식객으로서의 맛과 여흥까지, 시인은
수십 첩 반상으로 행복을 건네준다. 벚굴과
막걸리 한잔에 시 한 젓가락 올려주시니 무릉
도원이 따로 있을까? 시의 중간중간에 자꾸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된다. 사투리 한 점
으로 화룡점정 해주시니 그 또한 즐거움 아닐
까? 이른 봄에 맞이한 화도(花圖)를 묘사함으로
그리운 이를 꺼내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향수
가 있다. 얼마나 이쁘고 아름다웠으면 행복한
웃음을 열어놓았고 향기로움으로 축 늘어지고
주저앉았던 걸음과 생각을 활짝 피게 만들었던
가? 시인의 시를 통하여 시어와 발자취를 돌려
봄으로 인해 꽃과 강과 바람과 볕에 사랑했던
봄날을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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