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 / 신동혁
식탁보에 꽃이 수놓아져 있다
바람이 불면
나는 가시넝쿨을 뒤집어쓴다
창밖이 보이지 않아 벽을 기어오를 때
빈 접시들을 떨어뜨리고
나의 두 팔을 길게 떨어뜨릴 때
식탁보는 돌아오는 것이다
이미 불타버린 채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지내는 동안
어디선가 무섭게 꽃이 번지고 있어서
불이 눈을 뜨고 있어요
불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잠시 얼굴을 묻어보았을 뿐인데
아침은 없고
아침을 닮은 고요만 남아 있듯
식탁보에는 꽃이 수놓아져 있다
덮지도 펼치지도 못한 채
바람이 분다
―월간《시인동네》2018.1월호
<시인의 약력>
1990년 경북 구미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중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by 이 종원의 시 감상>
바야흐로 발화의 계절이다. 메마른 겨울동안
산자락에 발화된 불꽃이 온 산을 태우고 잿더
미를 만들고 갔지만 이제 잿더미를 헤집고 올
라온 꽃이 온 산을 노랗고 붉게 제대로 발화의
현장으로 만들 계절이다. 그때의 화마도 바람
이 큰 몫을 했지만, 이제 들이닥칠 꽃불도 봄바
람이 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시인은 식탁보
에서 발화의 원인을 찾았지만 실상으로는 마
음에서 생성된 것이리라. 나는 시인의 산을
지나가다가 피어난 한송이 야생화로부터 온
마음과 머리를 꽃으로 태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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