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 조현석
오월은 두 눈 부릅뜨고 살아 있기 좋은 계절
알알이 매실 달리고 사과꽃 피어나는
하늘 위로 신맛 단맛 서서히 물들어 갈 즈음
뿌리는 뿌리들끼리, 작은 잎은 작은 잎들끼리
쓴맛도 몰래 넘겨주곤 새침 떤다
햇살 강렬해지는 한낮은 잠시 죽기 좋은 시간
무덤 위에 입힌 떼도 튼실하게 잘 자라
장마철에도 떠내려갈 고민도 없어지고
장미마저 검붉게 농익어 떨어지고
비어가는 하늘에 능소화 등불 슬몃 내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틀린 적 없이 맞다
짧은 아쉬움 감추지 못해 붉어진 애비의 얼굴
꽃 피고 지는 사이사이로 벌나비 훨훨 날고
얇은 날개에 혼 실어 천국은 아닐지라도
가고픈 불꽃 지옥이라도 데려다줄는지 몰라
—《시로 여는 세상》 2016년 가을호
<시인의 약력>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
『불법, …체류자』 『울다, 염소』 등
< by 이 종원의 시 감상>
계절의 여왕이라고 공연히 말했을 리는 없다. 오월!!!
누가 보아도 공기 따듯하고 꽃 만연하고 향기롭고 아름
다운 계절임이 확실하다. 장미의 붉은 빛이 시선은 물론
심장까 사로잡기에 충분함을 고백한다. 그러나 또한
동음으로 파고드는 우리의 아픔이 실려있는 무거운 계절
이기도 하다. 시인의 노랫소리를 따라 나비의 날개를 타
고 따라가 본다. 벌써부터 쿵쾅대는 심장의 박동소리에
산과 들을 몇 개나 지나쳤는지 모른다. 멈추는 곳 어딘
가에서 나도 사과꽃 향기를 들이키고 보랏빛 라일락 향
기를 주머니에 가득 담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시의
단어에 섞어주고 싶다. 올해 오월에는 아픔과 설움 덮어
주고 과수원길 거닐며 물오른 시들과 같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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