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우편번호 /김종해
오늘 아침 내가 띄운 봉함엽서에는
손으로 박아 쓴 당신의 주소
당신의 하늘 끝자락에 우편번호가 적혀있다
길 없어도 그리움 찾아가는
내 사랑의 우편번호
소인이 마르지 않은 하늘 끝자락을 물고
새가 날고 있다
새야, 지워진 길 위에
길을 내며 가는 새야
긴 밤에 혀끝에 굴리던 간절한 말
그립다 보고 싶다
뒤적이던 한마디 말
오늘 아침, 내가 띄운 겉봉의 주소
바람 불고 눈 내리는 그 하늘가에
당신의 우편번호가 적혀있다.
오늘도 편지를 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
수신의 이름을 또렷이 쓴다
어머니
새야
하늘의 이편과 저편을 잇는 새야
사람과 사람 사이
그 막힌 하늘 길 위에
오작교를 놓는 새야
오늘 밤 나는 그녀의 답신을 받았다
흰 치마 흰 고무신을 신으시고
보름달로 찾아오신
그녀의 달빛 편지
나는 그녀의 우편번호를
잊은 적이 없다.
<시인의 약력>
김종해(金鍾海, 1941년~ ) 부산에서 출생. 1963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당선《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회상 수상
문학세계사 창립 대표를 역임
시집으로 《인간의 악기(樂惡)》(1966), 《신의 열쇠》,
《왜 아니 오시나요》,《풀》《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등
시선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간행
<by 이 종원의 시 감상>
김종해 시인의 오래된(2001년 발행) 시집 <풀>을
읽으며 시집 이름처럼 앞부분의 짤막한 시에 박혀
있는 온기와 따듯함과 물기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한달음에 읽어 내려가는 시집의 마지막 부분에 실
려있는 <그녀의 우편번호>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묻어있는 시인의 인간미와 공감을 나누었다. 잔잔
하면서도 심장의 고동을 이끌어내고 작은 시선일
지라도 명쾌하고 의미있는 구절에 쉽게 몰입이 되
었다. 사실 나는 매월, 고객에게 내가 팔고 있는
상품을 문구로 포장한 미사여구를 보내느라 우편
번호와 대면하고 있지만, 정작 상품이 아닌 마음
과 정을 실어 나르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지금은 메일이나 SNS로 쉽게 보낼
수 있고 동영상으로 치장하여 보낼 수 있는 길이 다
양하게 존재하지만 라때는 눈물로 적셔 쓴 사연이
마음을 맺어주던 시간이 있었기에 쉬이 동감을 촉
촉하게 쏟아놓았나 보다. 그러나 과연 그리운 어머
니에게라는 사모곡은 군대 시절 외에 언제 간절하
게 뽑아내었는지 되짚어보았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 너무 늦게서야 보름달에서 어머니의 우
편번호를 읽어내려 애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살
아계신 어머니의 눈빛을 대면하고 편지를 읽어드
리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돋아나
게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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