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수리공의 장례식 / 박서영
모든 죽음은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남은 사람들은 시계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흰 벽에 걸린 시계가 물고기처럼 가고 있었다
저 부드러운 지느러미
한 번도 만진 적 없어서 아름다운 지느러미
한 번도 본 적 없어서 더 아름다운 지느러미
나는 시계 속의 무량한 구멍으로 당신을 느낀다
장례식에서도 시간의 주유소는 번창하고 있다
울음을 뒤덮고 남은 웃음으로 지폐를 세는 손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뻔뻔함으로
시계를 본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국밥 한 그릇씩 앞에 놓고
심각하게 앉아있는 시간의 덩어리들
당신은 두려운 이미지만 남긴 채 웃고 있구나
평생 시계 속의 파닥거림에 몰두한 당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고단함으로
몸 안의 건전지를 갈아끼운다
심장을 너무 많이 찌른 바늘이
마음의 귀신을 파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경남문학》2016년 여름호
<시인의 약력>
경남 고성 출생
1995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좋은 구름』등
제3회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우리는 모두 시계 수리공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관리하며 돌이키려 하고, 뛰어넘고자 애를 쓰며
달아나는 시간을 멈춰 세우고 싶어한다. 어쩌면
화자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 같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3인칭의 나일 지도 모른다. 시간을 다스리
고 고쳐주던 사람이 시간에 묻히는 모습에서 평
생 하나에 몰두하며 살아가던 진지함에 경외를
느끼게 된다. 그가 끼고 살았던 시간의 작은 기
계장치들이 그의 손끝으로 수술되어 다시 뛰던
심장이, 정작 그의 심장은 다스릴 수 없는 불가
항력임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바늘로 찌르고
꿰매던 모습을 보드라운 지느러미로 살려놓은 형
상에서, 원형의 방정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맑아진다. 시계의 장례식을 다스렸던 수리공의 장
례식에서는 시간조차 엄숙하게 멈춰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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