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장부 / 이 종원
비포장도로 끝
세월의 발걸음 짚어놓은
녹슨 양철 지붕이 누워 있다
햇살이 깨진 유리창 쪽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선다
젊은 아낙은 노파로 바뀌었고
가판대는 듬성듬성 머리가 빠져
곧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어딘가 낡은 부적으로 걸려 있을 지도를 찾는다
십여 개 암호를 차례로 호출하지만
일치하는 숫자는 겨우 서너 개
그도,두부 막걸리 소주 같은 일반 명사일 뿐
눈깔사탕, 라면땅 등은 고어(古語) 되어 묻힌 지 오래다
노인도 나도 멋쩍은 웃음으로
기억의 자물쇠를 겨우 푼다
공소시효 끝난 아득히 먼 날
어머니 이름을 팔아 달콤한 맛을 수없이 도적질했던
그 물목들이 비문으로 서 있다
상환하지 않아도 될 영의 숫자에
속죄의 눈물로 다 지우지 못할 낡은 수첩
먼 길 떠나며 원본까지 가져가 버려
흔적 또한 없다는 것
침묵에 잠든 어머니를 깨워 몇 배로 갚아주고 싶다
- 시집 『외상 장부』(시와사람, 2017)
ㅡ
2013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
시집 『외상 장부』 등
2021년 시인뉴스 포엠 시인상 대상 수상.
내가 쓰는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