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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詩

서울 바리새인

 

 

서울 바리새인    /     이 종원

 

 

 

소나무 싹을 자른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차용되는 순간이다

그는 선천성 지적 장애였고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

붙잡거나 말려줄 성인들 또한 곁에 없었으므로

정사 참작이거나 동정의 여지마저

구할 수 없다

어린 새싹들이 잎으르 이루고

벌레들이 물러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구형(求刑)을 바라보며 침묵하는 다수

판결의 결과가 굳어진다

새로운 판례에 기댄 것은 아니지만

재선충이 휩쓸고 간 자리에 바람만 가득하다

푸르름 사라진 솔밭

출입금지 표지 안으로

폐허가 뒹굴고 있다

 

 

<시집 2017/외상장부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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