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읽은 詩

텃밭 / 김종해

텃밭 / 김종해

 

 

 

내가 뿌린 씨앗들이 한여름 텃밭에서 자란다

새로 입학한 나의 가족들이다

상추 고추 가지 호박 딸기 토마토 옥수수 등의

이름 앞에 김씨 성을 달아준다

김상추, 김고추, 김가지, 김호박, 김딸기.....

호미를 쥔 가장의 마음은 뿌듯하다

내 몸 잎사귀 가장자리마다 땀방울이 맺힌다.

흙 속에 몸을 비끄러매고 세상을 훔쳐보는 눈,

잡초의 이름 앞에도 김씨 성을 달아준다

잡초를 뽑아내는 내 손이 멈칫거린다

김잡초, 그러나 나는 단호하다

늘어나는 식구들 때문에 가장은 바쁘다

흙의 뜻을 하늘에 감아올리는 가장은 바쁘다

오늘은 아버지께 한나절 햇빛을 더 달라고 한다

목마른 내 가족들에게 한 소나기 퍼부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아, 살아 있는 날의 기도여!

 

 

<시인의 약력>

 

 

김종해(金鍾海, 1941~ )

부산에서 출생.

1963 자유문학 신인상에 당선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회상 수상

문학세계사 창립 대표를 역임

 

시집

인간의 악기(樂惡)(1966),

신의 열쇠,왜 아니 오시나요,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시선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간행

 

 

<by 이종원의 시 감상>

 

 

방금 주말농장의 감자와 고추, 가지와 오이, 호박과 상추밭으로부터 돌아와서 그런지 나는 시인의 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시의 이파리와 열매를 수확하는 느낌을 갖는다. 분명 남의 밭인데, 시의 작물조차 시인의 성을 따라 김씨 열매인데 나는 무상으로 가져다가 이씨 성을 붙이고 맛을 보며 향을 즐겼으며 그러기에 미각을 돋을 수 있음에 감사의 목례를 올리고 싶다. 아마 시인 또한 독자에게 흔쾌히 나눔의 선물을 비 뿌리듯 뿌려주고 있는 것이며, 나는 햇살을 훔치듯 가져다 맛있게 먹는 기쁨을 누렸다. 덧붙여서 열매 뿐 아니라 잡초에까지 성을 붙여놓으며 식()의 자리에 접목해놓은 삶과 시와 또한 생각의 씨앗들을 나 또한 가져다 접목을 했으니 그 DNA의 일부는 꽃피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울러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려는 간절한 갈구와 기도의 소리에 내 기원도 같이 얹어본다. 그 한나절 햇빛과 소나기, 같이 누려보고자 한다.

'내가 읽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집 / 윤제림  (0) 2023.02.12
남루 / 이건청  (0) 2023.02.12
물의 종족 / 문성해  (0) 2023.02.12
사과상자의 이설 / 전다형  (0) 2023.02.12
뜨거운 돌 / 나희덕  (0) 202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