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상자의 이설 / 전다형
어떤 사과를 담았던 것일까
골목에는 각들이 없다
홀가분하게 속을 비워낸 상자가 각에 대해 각설
어제를 치고 오늘을 박다 뽑은 못
구멍 숭숭한 사과상자 눈에 밟혔는데
사과가 사회로 읽혔다
반쯤 아귀가 비틀린 자세로 골목을 물고 늘어졌다
상자가 불량한 자세로 한껏 감정을 부풀렸다
생채기에서 흐른 사과 진물이 그 진통을 기록해놓았다
아프면서 큰다는 말, 싸우면서 정든다는 이설
옹이에 옷을 걸고 햇살 쪽으로 기운 나이테 읽자
빈 사과상자 부둥켜안고 끙끙거린 내 안의 사과가 쏟아졌다
사과밭 모퉁이를 갉아먹던 사과 벌레가 내 늑골 아래 우글,
다 파먹을 요량이다
사과가 내 알량한 고집을 잡고 늘어졌다
사과를 비운 상자는 성자다
꺾인 전방 마주 선 내 볼록 눈거울이 맵다
<시인 소개>
경남 의령 출생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부산시인협회 회원,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수선집 근처』 『사과상자의 이설』.
<by 이종원의 시 감상>
나를 담고 있던 사과 상자를 찾아보았다. 쓸모없다는 핑계로 골목에 내다 버린 것은 아닌지 가설에 사로잡혀 성자인 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사과 상자는 어떤 각을 이루고 있는가? 아귀는 잘 맞고 있는가? 박힌 못 뽑아버리고 향기에 취해 혼자만의 유리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서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과향만 남아있다고, 그리하여 혹시 나는 사과가 아닐까 하는 엉뚱함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다 갉아먹고 남겨놓은 씨가 새로운 모습으로 떡잎을 피우고 있다. 시인의 <사과 상자의 이설>을 읽는 이 봄에 새로운 사과 꽃을 피우고 사과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며 벌레를 솎아냈다. 정설이면 어떻고 이설이면 어떠하리. 신맛이 피어나고 또 떨떠름한 열매를 매단다 해도 나도 새로운 이설 하나 쓰게 되는 것이리라. 벌레 먹은 내 고집쯤은 내려놓고 사과를 건네주고 건네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묘하게 이설에 사로잡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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