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이 있네
그러면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 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화상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가네
단 한 번도 흘러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시인 소개>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 『야생 사과』
시론집『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반통의 물』 등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by 이종원의 감상>
갑작스레 다가온 나희덕 시인의 <뜨거운 돌>이라는 시에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마지막 연의 식어가는 돌에 공감을 해서일까??
모든 것이 내려가고 멀어져가고 작아져가고 가벼워지고 식어가는 나의 현실에서 다시 한번 반추해보는 뜨거운 돌은 선명한 꿈처럼 뇌리를 파고들게 한다. 누구나 가졌고 누구나 그려보았을 이십 대의 펄펄 끓는 돌을 조금이라도 더디 식게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식어가고 있음을 기억하기에 격하게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뿐 아니라 많은 시인들의 변함없이 이어지는 시작(詩作)은 잠시 휴화산었을지 모르지만 언제라도 분출할 수 있는 화산의 용암이리라 믿는다. 손바닥은 식어 굳은 살이 박혔겠지만 마음은 용암은 아니더라도 꽃처럼 활짝 웃는 지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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