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 이 명윤
내 마음의 강가에 펄펄,
쓸쓸한 눈이 내린다는 말이다
유년의 강물냄새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말이다
곱게 뻗은 국수도 아니고
구성진 웨이브의 라면도 아닌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나 오늘, 원초적이고 싶다는 말이다
너덜너덜해지고 싶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도시의 메뉴들
오늘만은 입맛의 진화를 멈추고
강가에 서고 싶다는 말이다
어디선가 날아와
귓가를 스치고
내 유년의 처마 끝에 다소곳이 앉는 말
엉겁결에 튀어나온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뇌리 속에 잊혀져가는 어머니의 손맛을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해 낸 말이다
나 오늘, 속살까지 뜨거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은 그냥, 수제비 어때,
입맛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 오늘 외롭다는 말이다
진짜 배고프다는 뜻이다.
**(시인 소개 )**
2007년 《시안》으로 등단 시마을 동인 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시마을 문학상>, <전태일 문학상> <수주 문학상>,<민들레 문학상>, <솟대문학상> 수상 < by 이종원의 감상 > 하늘이 부슬거리는 날,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때 자천 타천으로, 그러나 이구동성 만장일치로 외치는 메뉴 중 하나가 수제비 아닌가 한다. 그 속에는 고향도, 시골스러운 멋도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맛도 들어 있어서 향수의 전율을 느끼고 싶어 하는 주파수에 동조되는 것이리라. 기름진 맛과 쫄깃한 치즈로 토핑한 피자와, 기름지게 불러대는 치킨과 퓨전의 파스타를 제치고 수제비를 먹으러 가자는 이유는 동맥경화 되어 가는 자극적인 것에서 순수를 찾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명윤 시인의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이란 시에서 나는 진솔하면서도 친근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마주친 눈인사에 막걸리 한 잔까지 흔쾌히 건네줄 것 같은 소감까지 느끼게 된다. 아주 서민적이면서도 풍요로워서 목구멍뿐 아니라 가슴까지 울컥하게 하는 감칠맛이다. 시인은 어디서 이런 육수를 가져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향기 나는 맛집을 가꾸고 있는지 늘 부럽기만 하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도 주변의 친근한 사물과 환경을 모두 튼튼한 레시피로 만들어서 시의 맛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맛을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단골이 되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음 편도 곱빼기로 주문하여 배불러지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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