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의 진화 / 김 유석
모모와 미미, 내게 묶인 두 마리 얼치기
공연히 마주보며 짖는다. 제가 묶인 줄도 모르고 묶여 있는 서로를
짖어대는 것인가. 묶인 것들은 함께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는가.
가까이 있는 외로움이란
발정 난 제 몸을 미친 듯 핥는 모습보다 절절할지 모를 일
줄을 풀었다.
개처럼 날뛰는 두 마리 개가 보인다.
긁어대고 으르렁거리고 뒹구는 몸짓 외
묶이지 않는 외로움은 없을까
쉽게 풀어지는 저 작태가 외로움일까
몇일간 밖을 싸돌던 퀭한 눈구석이 꼬리를 앞세우고 돌아와
밥그릇 옆에 웅크리는 모습이 외로움일까
먹이를 잘 찾는 놈이 우두머리가 되는 늑대의 족속에서 밀려
인간에 귀화할 무렵 흔들기 시작했을 꼬리,
먹이 찾는 법을 잊고 묶인 사실만 기억하게 된
꼬리는 저 자신을 향한 사디즘*
고리처럼 말아 올린 꼬리로부터
외로움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나온다.
꼬리를 떼면 몸통도 사라진다.
흔드는 모양과 횟수로 감정을 통제하는 기교에 이른
저 개 같은 본능을 향해
나도 가끔씩 짖는다. 꼬리뼈가 시큰거릴 때가 있다.
*프로아트(Sigmund Freud)
<김유석>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상처에 대하여』가 있다.
<by 이종원의 감상>
묶인 개의 목줄을 풀어주어도 개는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야생이었던 그를 데려다 키움으로 그는 홀로 살아갈 힘을 잃었던 것이다
먹이를 위한 것뿐 아니라 곁을 붙들고 살아가야할 상생을 느꼈을 것이다
꼬리가 발달한 이유도 서로에게 의사표현을 하고 감정을 나누기 위함 아닌가 한다
꼬리를 자름으로 몸통도 없어진다는 구절은
의사 표시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을 말함이리라
용불용설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시인의 결구에서 꼬리뼈가 시리다 라는 말은
흔들 수없는 꼬리로 인하여 나눌 수 없는 대화와 교감에 대한 반증 아닌가 한다
최근 현대인들에게서 대화의 부재를 본다
꼬리를 자르고 실아가는 모습에서 외로움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것은 부딪치지 못하고 혼자 살아가는 방식에서 오는 단절인 것이다
특히 가족간의 소통의 부재도 대표적인 것중 하나다
꼬리의 진화일 수도 있는 소통의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웃음과 감탄사 격려와 관심, 그리고 토닥임과 포옹 등 스킨쉽까지
진화된 꼬리로 외로움을 걷어낼 수 있도록
꼬리뼈가 다 닳아 없어지기 전에 전수해야 할 우리의 사명 아닐까 한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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