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사는 영혼처럼 / 강인한
외딴 섬으로 가는 다리였다.
버스는 오 분쯤 달려 섬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널 때 창밖으로 바다가 아득하였다.
파랗게 보이는 높고 소슬한 하늘,
아래에 어두운 보랏빛,
그 아래 먹구름과 양털구름이 뒤섞이고.
청동의 파도주름과 맑은 햇빛, 색색의 구름들,
높은 데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사이사이 구름을 뚫고
단숨에 꽂히는 바닥은 은빛 바다였다.
햇빛을 줄기줄기 온몸에 받아 적는
보얀 구름 커튼에 잡티 하나.
차창에 묻은 티끌일까 손가락으로 헤집는다.
점점 키워보니 아뜩한 하늘에
아, 숨어 사는 영혼처럼 혼자 날고 있는 새였다.
⸻격월간 《현대시학》 2019년 3-4월호
<시인의 약력>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집으로 『이상기후』
『불꽃』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푸른 심연』 『입술』 『강변북로』,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 등
1982년 전남문학상,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by 이종원의 감상>
이 시절 하늘만큼이나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파랗고 흰 배색의 그림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시간, 그러하기에 마음조차 치미는 욕심을 눌러놓
고 다스린 후에 하늘을 손바닥으로 지긋이 쥐어짜
서 그 말간 옥빛 물로 탁한 마음과 시의 핏줄을
채워놓고 싶어진다. 그렇게가을과 하늘과 함께 하
나가 되어가는 행간에서 나 또한 숨어 사는 영혼
처럼 새가 되었다가 바다의 물고기가 되어가는 찰
나의 행복한 웃음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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