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종족 / 문성해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불러본다
물고기 베고니아 버드나무 여름 들판의 옥수수들
그리고 삼 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주워온 몽돌 한 개
그것은 물만 주면 반들반들한 정수리를 내게 보여주곤 했지
옛날 옛적 담뱃내 쩐 누런 방에서 죽은 외할머니도
사흘간 물만으로 사시다가 호르륵 날아가 버리셨지
혹서기의 뱁새처럼
나도 가끔은 물만으로 살고 싶은 저녁이 있네
물가에 앉아 물가가 주는 노래
물가가 주는 반짝거림만으로 환희에 찰 때
그건 물로만 살게 될 나의 마지막을 미리 체험하는 순간,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최후를 사는 것들
느린 보행의 늙은 사마귀
늦여름 오후의 백일홍
저녁이 오기 전 저수지 위에서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것들
눈앞의 숲을 자신이 가진 가장 부드러운 움직임들로 마음껏 장식하고는
맑은 물 한 컵을 마주한 요정의 저녁처럼
한가로운 생의 조율이 끝나면
물이 밀려가듯 한 세계가 닫힌다
<시인 소개>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라 』『 아주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등
<by 이종원의 시 감상>
사람은 99%의 물로 이루어졌다고 하기에 물의 종족이 정확히 맞다.
물을 본다는 것과 물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내게 휴식이 필요하거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의 퇴로를 열어주라는 것과 같다. 시인은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과 시를 잃어버린 시인 중 누가 더 물에 가까워지려고 할까 하는 시니컬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시를 읽는 것과 되씹어보는 것, 그리고 시를 잣는 일에서도 잠시 물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시의 힘을 추가로 얻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시인에게 있어서 물은 시와 같은 것일 수도 있기에 나 또한 이 한 편의 시에서 갈증을 덜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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