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치 / 김경후
어둑한 보도블록,울툭불툭,넙치 하나,누워 있다,그것은 진흙색 바닥보다 넓적하게,깊게,바닥의 바닥이 되고 있는 중,가끔,이게 아냐,울컥,술 냄새 게운다,뒤척인다,하지만 다시,눌어붙어,바닥이 된다,게슴츠레,왼쪽 눈,위로,울컥,흙탕빛 노을 지나가고,비닐봉지들,키득대는 웃음,지나가고,슬리퍼 끄는 소리,지날 때마다,울컥,그래,나,바닥이라고,소리친다,그것은 더욱 격정적으로 바닥이 되기로 맹세한다,끌로도 끝으로도 떼어 낼 수 없는 바닥,더 바닥,더,더 바닥이 되기로,울컥,
지금 넙치가 나올 철인가,뭐,그렇지,이 바닥이나,저 바닥이나,다 그렇지,사내 둘,바닥 끝 지나 골목 끝,횟집 문을 연다,
-계간《시인수첩》2018년 여름호
<시인의 약력>
서울 출생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 『 열두 겹의 자정』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등.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지금이 바닥인 것 같은데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들어 지층 아래 지하실이 요즘의 일상이 되었다. 그럼
에도 그 바닥 아래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름
대로 애환을 토해내며 삶을 붙들고 있음이 감사한 일
이다. 넙치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바닥에 붙어 있는
것이며 땅바닥에 붙어 사는 일상 또한 밟히면서도 바
닥을 다지며 올라서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보인
다. 보도블럭을 두들겨 밑바닥 생의 현장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제는 올라설 일만 남았다는 자
위와 함께 용기를 같이 나누고자 하는 것으로 믿는다
잘라놓은 넙치의 하얀 살점이 입안에서 향으로 맛으
로 부서진다. 시의 향으로, 시의 맛으로 인해 손가락
이 부지런하게 자판 바닥을 두드려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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