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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울음의 내부-검은오름에 들다 / 강해림

울음의 내부

-검은오름에 들다 / 강해림

 

 

 

 

여자가 운다 삼킨 울음이 울음을 잡아먹는 줄 모르고

뜨겁고 시뻘건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북받쳐오는 뭉크덩한 핏덩이같은 것이

울음과 울음이 만나 격렬하게 싸운다 부글부글 끓는다 불기둥이 솟

, 어떤 것은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 붕괴했다가는 자멸하는

 

장곡사 누각에 큰북이 찢어져 구멍 난 채 매달려 있다 얼마나 울었는

지 눈물자국이 빤질빤질하다

 

꽃이라는 짐승이 모가지 채 뚝뚝 떨어져서는 눈물을 질질 짜는 이 청승

 

담뱃불을 비벼 끄듯 소소한 감정들도 울대가 붉어졌다 안절부절못하

고 난간 위로 뛰어올라가질 않나 난폭해졌다 울음의 징후를 미처 알아

채지 못한 밤이었지

 

간밤에 꾼 악몽처럼 눈물 없는 것들, 천박한 웃음들에게 울음이 내쫓

기다 막다른 골목에 퍼질고 앉아 펑펑 울고 있는 저기 저,

 

검은 오름 가는 길은 흙도 돌도 숲도 검은 빛, 음산하다 달의 음기가

해의 양기를 잡아먹는 형국인 문장들은 뒷목덜미가 서늘해지지

 

숲 음지에 천남성*이 지천이다 뱀 대가리처럼 고갤 빳빳이 쳐들고 서

있는 저 꽃의 울음도 검은 빛

 

너는 뼈아픈 후회, 끝내 울음의 면사포를 씌워주지 못한

 

 

* 양귀비가 죽을 때 먹었던 사약 재료로 쓰였음

 

<시인의 약력>
 


 
1954년 대구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수료

1991 민족과문학 현대시로 등단

시집 구름사원』『환한 폐가』『그냥 한번 불러보는

 

 

 

 

< by 이 종원의 시 감상>

 

 

제주의 검은 오름은 오래 전 화산에 의해 패이고 깎인

아픔을 품고 있었는데 용암처럼 뜨거운 이데올로기의

한을 재차 겪어온 한을 담고 있다. 시인은 시제에서조

차 울음의 내부로 표현하고 있다. 전쟁의 뒤끝에서 

오는 분열과 다툼, 그리고 저주에 이르기까지 상흔은 

갇혀있다가 가끔 돌출될 때가 있음을 본다. 황토의 본

색까지 잃어버리고 검은 색으로 물들은 것은 어쩌면 

불덩이보다 더 짙은 핏빛을 담고 있는 것으로 표현해

주고 있어서,가히 그날의 저항과 항쟁을 고스란히 투

영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자료와 증언에 의해 인

식하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회복되고 

유되고 있는 모습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검은 색 오름을 통한 그날을 투영한 시인의 울음소리

에 다시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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