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 박은영
넓은 들판이었다
우물가 동백꽃도 다 떨어진 조용한 오후였다
어머니는 햇빛을 등진 채
어린 쑥의 시린 발꿈치를 어루만졌다
살아온 세월만큼 더딘 걸음으로 옮겨가는
당신의 갈라진 손끝은 푸른 물이 배고
대소쿠리는 이른 봄으로 묵직했다
산 벚나무 환하게 눈을 뜨는 봄
먼 들판을 보고 있으면 입안에 쓴물이 고였다
쓰디쓴 봄의 흔적을 지우고
양지 바른 자리에 웅크린 어머니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된장뚝배기가 끓고 찰진 떡 치대는 소리가 났다
엄마 엄마 부르면
꽃대 같은 고개를 들어 낭창거리고
다시금 몸을 숙이던 유년의 어느 저편
까막눈 당신은 저물도록 들판을 읽어내려갔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푸른 쑥이
내 눈물콧물에 버무려지고 있었다
개구리 우는 논두렁을 지나
산 벚꽃 흩날리는 들판을 내달리다 넘어진
어린 무릎에 쑥물 든 시절이었다
<시인의 약력>
전남 강진 출생, 2018년 문화일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1회 농어촌희망문학상, 제2회 제주4.3문학상 대상. 제2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제9회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수상.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
<감상 by 이종원>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들판으로 나간다. 그리운 어머니와 재회하는데 쑥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추억과 맛, 두가지를 동시에 만족하게 해준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이 겪어왔던 지난함에 대하여 눈물을 끌어내고 향수에 젖게 만든다. 어찌 보면 너무 고전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행간에 스며들어있는 키워드에서 상큼하고 질감 있는 언어에 청량감을 느낀다. 어린 쑥의 시린 발꿈치는 시인과 화자의 어린 시절과 같은 것이기에 줄줄이 이어지는 회상은 내 유년과 닮았고 독자의 유년과 닮았기에 공유가 쉬워진다. 시란 같은 사물을 보고 느낌과 상상을 펴내는 것이지만 노포의 맛집처럼 찾아오는 식객에게 깊은 국물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쑥 향기 깊은 버무리에 식욕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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