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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詩

날개의 주소 / 임동윤

날개의 주소 / 임동윤

 

 

 

숲이 그리운 것들은 늘 젖어 있다

머리를 덮은 그물망이 걷혀야

비로소 그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대공원

철망 우리 속에서 따닥따닥 소리만 낸다

아침이면 강물에 반짝이던 햇살

풀잎마다 고이던 눈빛을 기억한다

물풀 찰랑거리던 소리도 기억한다

그러나 나에겐 햇살이 없다

물수제비로 미끄러지던 실안개도 없다

오직 눈발을 그리워하는 북극곰처럼

그곳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그물망에 부딪혀 이내 곤두박질치고 만다

강으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

상처투성이의 어깨와 흐릿해진 눈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철망에 몸 부딪치다

끝내 주저앉아버린 나날들

울긋불긋 치장한 발길들이 찾아들면

불안한 소망을 가까스로 펼쳐들고

나는 다시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다

오랜 출산의 기쁨도 잊은 채

다시 하얗게 깃을 세워 본다

언제 그곳으로

물수제비 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계간 시와경계 2010년 여름호

 

 

 

 

<시인의 약력>

 

 


 

1948년 경북 울진 출생1968년 <강원일보>신춘문예 시,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시집 『연어의 말』,

『나무아래서』,『함박나무가지에 걸린 봄날』『아가리』 『따

뜻한 바깥』 『고요한 나무 밑』『저 바다가 속을 내어줄 때』등

 

 

 

 

<by 이 종원의 시 감상>

 

 

갇혀 있다는 것은 늘 슬프고 아픈 것이다.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때는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타의에 의해 구속받게 될 때, 빼앗긴 걸음과 비행에 

대하여 솟구치는 배반은 거의 두 배 이상의 상실감

에 이른다. 밖에서 우리 안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포

획되어있는 많은 무리에게서 포만감을 갖게 되겠지

만 창공을 활보할 수 없는 날개는 서러워 스스로 추

락에 익숙해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추락하

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날고 있는 것일까? 창살 없

는 우리 안에서 부자유가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

른다. 조금씩이지만 창살이 무뎌지고 얇아지고 있음

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제 부지런히 나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사람들은 쉽게 적응하며 야

생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어린 생명들은 그 연습조차

부족하고 어려웠으니 그것이 많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물수제비 제

대로 날리는 우리의 정상적인 물길로 거슬러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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