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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詩

달의 뒷면

달의 뒷면      /     이 종원

 

 

철거를 앞둔 재개발 지역

모퉁이를 돌아서자

반쯤 깨진 빗방울이 유리창에 붙어있다

냉기에 웅크리고 있던 구멍은

관음의 눈빛을 기다리는 듯

깊은 탄식에 신음을 섞어놓았다

겉옷을 벗은 해는

속옷까지 벗은 방바닥에

간헐적 입술만 달싹이다가

고백 한 번 들여놓지 못하고

기척만 문고리에 붙여놓고 간다

얼마나 여러 번

다리도 없는 것이

날개 또한 없는 것이

문틈으로 들어와 한 몸처럼 섞이고자 했는가

엄동설한 꽁꽁 얼었던 기억들이

마지막 햇살조차 빼앗길까

아주 먼 곳

남쪽으로 떠나갈 작정이다

이름을 빌리기도 했던

산등성이 북쪽

해의 꼬리를 만지작거릴 즈음

작별하지 못한 태양이

가까운 역에서 출발을 재촉한다

기차 우는 소리

뱀의 꼬리처럼 빠져나갈 때

다시 돌아올 기적은

문고리에 걸어놓은 채

인적 끊긴 골목을 나서고 있다

눈이 부시지만, 태양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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