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쓰는 詩

나비의 무게

나비의 무게      /    이 종원

 

 

 

우화가 시작되려는지

성장통에 말수까지 줄어든다

스스로 골방으로 옮긴 고치는 힘에 겨워

타래 속 매듭처럼 안으로만 구부러진다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기도 전

화려한 날개에 홀린 탓

너무 이르게 굴레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문은 굳게 닫혀있고

침묵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문밖으로 밀려난 나비

고치를 건너뛰는 법을 알려주고 싶지만

그건 생명을 단축하는 일

나비는 침묵으로 눈물을 닦으라 한다

날갯짓만으로도 태의 기억을 전해주려

온 힘을 합장에 싣고 있다

 

껍질을 벗겨내느라

털어낸 울음이 수북한데

유리창 너머 수화 같은 눈빛을 읽었을까

고치 어깨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날개를 가볍게 하여

꽃과 꿀 위로 춤추듯 넘나드는 나비

자신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으로

세상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직 몇 번의 고치에서 살아 돌아와야 한다

 

 

'내가 쓰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른 태양 / 디카시  (0) 2023.05.13
김 씨  (0) 2023.03.22
달의 뒷면  (0) 2023.03.02
목련이 지던 날  (0) 2023.03.02
로드킬  (0)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