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 김재진
노랗게 번지기 전 나는 이미
개나리가 필 것을 알고 있다.
가파른 비탈에 뿌리내린 채
겨울을 견디어 준비한
네 눈물의 빛깔을 알고 있다.
미미하게 묻어오는 바람의 안부를
속달로 접수하며
나 역시 봄을 준비할 때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금세라도 손가락 끝에 묻어나는 것 같은
그 화사한 절규 속에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
꽃은 나무의 눈물,
가지마다 별을 달고 솟아오를
말없는 탄식,
또 한번의 상실
다가오는 비탈에 서서
네 이름 불러본다.
<시인의 약력>
김재진 시인, 소설가, 1955년 대구 출생, 계명대학교,
1976년 영남일보,조선일보 신춘문예, 작가세계 신인상.
시집으로 <가슴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연어가 돌아올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와 장편소설 <하늘로 가는 길>,
동화집 <엄마의 나무>, <어느 시인의 이야기> 등이 있다.
<by 이 종원의 시 감상>
너무나 생각이 많고 또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세상, 바쁜 걸음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생각을 질주하기에 놓치는 것들과 잃어버리는 것들
이 많다. 편견과 편식으로 불안정하고 기우뚱거리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얻는 것이 있다면 필시 놓치는 것도 있을 터이지만
우리는 얻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편한 것을
좇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조금만 천천히 간다면 분명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며 충분히 잡을 수 있
는 새로운 것들로 인하여 즐거움이 배가 될 텐데
게으름을 밀어내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계절이
불러오는 상실의 무대처럼 우리는 늘 이전 것을 잃어
버리듯 떠나보내고 있다. 봄의 뜨락에서 겨울이 준비
해놓고 가버린 꽃의 싹은 상실의 대가로 얻어낸 선물
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아마도 매번 계절이 바뀔 때마
다 되풀이되고 있는 시인만의 애틋함이며 솟아나는
시의 싹, 그리고 심장의 박동을 크게 하는 설렘이라고
생각되어 저의 개인적으로 반어법을 통한 상실의 기
대감이라 여겨 위안을 삼는다. 지금은 겨울을 상실하
고 봄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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